초고온가스로(VHTR)는 2030년쯤 상용화를 목표로 세계 13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제4대 원자력시스템 국제 포럼(GIF)’의 원전 중 안전성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자로 출구 온도가 950도에 이를 정도로 고온이며 냉각재로 물 대신 헬륨기체를 쓴다.

VHTR는 방사성물질 누출 가능성이 낮고 공기로 자연스럽게 냉각되며 폭발이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또 발전소를 작게 만들 수 있어 해안가에 대규모로 건설하지 않아도 돼 쓰나미 등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

△원자력연 제공.

● 3중 코팅된 좁쌀만 한 알갱이 연료 사용

VHTR의 가장 큰 특징은 세라믹으로 둘러싸인 우라늄 입자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0.5mm 직경의 우라늄을 세라믹으로 3중 코팅해 직경 0.9mm의 ‘피복입자’를 만든다. 크기가 작을 뿐 아니라 특수 코팅 처리가 돼 있어 우라늄이 직접 공기 중에 노출될 일이 없다.

한국 원자력연구원 수소생산원자로기술개발부 김용완 부장은 “금속으로 이뤄진 핵연료의 피복재가 녹아 방사성물질이 대기로 방출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같은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피복입자를 흑연으로 만든 주먹만한 크기의 구(球) 안에 고르게 뿌리거나 흑연 블록 형태로 만들어 VHTR의 연료로 쓴다. 아직 개발 단계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구형과 블록형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경수로에서 핵연료의 연쇄반응으로 인한 열을 식히는 데 물이 이용되는 것과 달리 VHTR에서는 헬륨이 냉각재 구실을 한다. 헬륨은 매우 안정된 원소로 산소와도 반응하지 않으며 방사선을 쬐어도 ‘방사성화(化)’가 되지 않는다. 김 부장은 “세라믹 속에 들어있는 우라늄은 18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냉각재도 2차 방사성 물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이 적다”고 말했다.

● 공기만 통하면 자연 냉각… 노심 용융-폭발 원천 봉쇄

경수로에서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는 격납용기이다. 김 부장은 VHTR는 격납용기마저 손상돼도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격납용기 내부를 공기로 식히고 있으며 만에 하나 이 용기가 깨진다고 해도 공기가 원자로를 더 잘 식혀준다는 설명이다.

감속재인 흑연은 열 전도성이 우수하다. 원자로에 문제가 생겨 연쇄반응이 멈추면 남아있는 열이 원자로 바깥으로 전도된다. 원자로에 전달된 열은 복사로 90%가 바깥으로 방출된다. 또 격납용기로 외부의 공기가 유입돼 대류에 의해 자연적으로 순환되면서 원자로를 식힌다. 특별한 냉각 시스템이나 전원이 없어도 공기에 의해 냉각되기 때문에 노심용융이 일어날 염려가 없다.



VHTR는 폭발이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 없게 설계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난 것은 핵연료의 금속피복재가 녹으면서 냉각재인 물과 만나 수소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VHTR에는 물도 금속피복재도 없어 수소폭발이나 수증기로 인한 증기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

김 부장은 “VHTR는 구조가 단순하고 연료 양이나 종류를 조절할 수 있어 소형화가 가능하다”며 “대규모로 해안가에 건설할 필요가 없어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원전은 바닷물로 뜨거워진 냉각수를 식히기 위해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VHTR는 고온으로 전력 생산 효율이 현 경수로에 비해 50%이상 향상되기 때문에 소형 모듈로 경제성을 높일 수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26년까지 VHTR 실증로를 개발해 운전한 후 상용화 할 계획이다.

최세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jul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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